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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신입생을 맞이할 만반의 준비가 완료되었고, 강의 등 제반 학사업무가 순조롭게 진행되자 추후 이전을 대비한 안산캠퍼스 조성사업에 주력하였다. 79년도 2학기 이전을 전제로 8월 31일까지 우선 800명의 학생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완료해야만 했고, 이를 위해 학교부지 조성, 교사신축 등을 조속히 착공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어 1979년 4월 1일에는 분교 건설에 따른 효율적 운용을 도모하기 위해 분교 건설 추진위원회 보강을 위한 임원 선임이 이루어졌는데, 이를 통해 개편된 기구와 임원은 다음과 같다.
[[파일:반월분교 건설 추진위원회.jpg|섬네일|반월분교 건설 추진위원회]]
*1979년 3월 23일 건설부장관으로부터 반월 신공업도시 대지분양기준 승인을 얻은 산업기지개발공사가 3월 29일자로 학교부지 매매계약 체결 동의요청을 해오게 되었고(도입 430-2945), 우리대학은 이에 동의(한법 제136호), 3월 31일 마침내 반월신공업도시 녹지지역 내 42만 평에 대한 부지 매매계약이 정식 체결되었다. 부지 매매계약 체결이 완결되자 우리 대학은 서둘러 4월부터 분교 신축공사에 착공코자 공사추진에 따른 업무협조공문을 산업기지개발공사 사장(한법 제138호)과 동 반월현장소장 앞으로 동시에 발송, 협조를 의뢰하였고, 5월 8일 산업기지개발공사로부터 분교설립부지에 대한 토지사용 승낙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5월 17일 금요일 오후 2시, 마침내 역사적인 안산캠퍼스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기공식이 있는 오전, 교사건축 허가도 나와 기공식과 동시에 건축공사를 위한 정지공사에 착수하였다. 바야흐로 서해안 시대에 그 한복판 광활한 대지 위에서 내외 귀빈들의 축복속에 거행된 이 기공식이야말로 개교 40주년을 맞은 한양학원 최대의 경사요, 새로운 도약의 신기원이 이룩되는 순간이었다. 기공 당시 첫 입학생이 4학년이 되는 82학년도를 완성년도로 잡은 1차 안산캠퍼스 설치계획에 따르면, 기초교육관(과제도서실, 식당 포함) 4,317평과 교지정지공사 5,000평을 8월 31일까지 완료하고, 본부 건물(3,300평)과 정지공사 10,000평(체육장 포함)을 12월 31일까지 완료하며, 80년도 전반기에 부속공장과 동력실, 후반기에 기숙사 1차 공사를, 81년도에 종합도서관(7,600평), 82년도에 기숙사 2차 공사와 강당(2,400평), 학생회관(2,100평)을 완공키로 계획하였다.
*이와 같은 진행과정에서 1979년 9월 80학년도 ‘전국대학 입학정원 조정’ 결과 80학년도 본 대학교의 입학정원이 700명 증원되었는데 이 가운데 500명이 반월분교에 배당되었다. 이로써 반월분교는 기존의 3개 학과 800명에서 금속재료공학과 100명, 산업공학과 80명, 영어영문학과, 일어일문학과, 독어독문학과, 불어불문학과 각 40명, 경제학과, 경영학과, 무역학과, 회계학과 각 40명씩 500명이 증원되어 1,300명의 규모가 되었다. 당초 공과대학 반월분교 형식으로 출발한 안산캠퍼스는 그동안 반월분교, 반월공대 또는 반월대학으로 불렸으나, 이제 13개 학과 3개 계열로서 종합대학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규모도 커졌으므로 명칭을 변경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1983년 이후 ‘한양대학교 반월캠퍼스’를 정식 명칭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또한 이에 따라 편제도 다음
과 같이 개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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