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뿐만 아니라 정부가 수도권에 과중하게 집중되어 있는 인구와 인구집중의 요인이 되고 있는 각종 기능 및 시설을 선별, 적정하게 배치하기 위해 반월신공업도시 건설과 관련하여 1977년에 수립 추진한 「수도권인구 재배치계획」으로 말미암아 수도권 소재 48개 대학교의 증원은 일체 억제당하게 되었다. 이에 우리 대학으로서도 장기 발전을 위한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분교설립 계획은 이러한 가운데 대두된 것이었다.
===분교 설립 인가 과정===
*1977년 말경 김연준 총장의 지시에 의해 제2캠퍼스 설립 계획을 착수하기는 했으나 아직 후보 지역도 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구체적 단계까지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와 같은 시기에 정부의 수도권 인구 재배치 계획에 따른 정부의 발표는 새로운 전기가 되어 주었다. 정부의 정책을 구체화하자 본 대학의 분교 설립 계획도 보다 활기를 띠었다. 분교 설립의 위치 선정 문제가 반월 지역으로 해결이 되면서 분교 설립 계획은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분교 설립 후보지를 물색하던 중 1978년 1월 중순, 본 대학 출신으로 당시 산업기지개발공사 부사장이던 이병칠 씨와 동 개발담당 이사인 전유석 씨로부터 “반월 신공업도시 건설 계획에 대학 설립 부지가 23만 평 가량 책정되어 있으니 그곳에 분교를 설립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의가 있었고 곧바로 김연준 총장을 비롯한 당시 학교 간부들이 현지를 답사, ‘안산’으로 위치 결정을 보게 된 것이었다. 안산은 서울에서 통학 가능한 거리에 위치하면서도 수도권 범위에 제외되어 있어 분교 설립에 지극히 유리한 조건을 갖춘 지역이었으며, 정부의 안산 신공업 도시 건설 정책과 전통 깊은 공과대학을 포용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에 부응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지닌 우리 대학의 원대한 계획이 서로 합일되어짐으로써 그 본격적 계기가 마련되었던 것이다.
*분교 설립의 위치가 확정되자 설립계획은 급속히 추진되었다. 1978년 1월 24일 오전 10시 재단 이사회는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분교 설립의 건’을 토의, “반월지역에 공과대학 분교를 설치할 것”을 만장일치로 결의하고 동년 2월 6일에는 ‘고급기술인력 양성’과 ‘고등교육 인구의 서울 집중 현상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공과대학 반월분교 설치계획서’를 문교부에 제출(한법 제46호 공문)하였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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