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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漢大新聞>은 종이 신문의 총체적인 위기에 맞서 대학 문화를 형성하고 주도할 수 있는 건강한 언론으로 거듭나고 있으며 전국 최고의 대학신문으로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현재 <漢大新聞>은 종이 신문의 총체적인 위기에 맞서 대학 문화를 형성하고 주도할 수 있는 건강한 언론으로 거듭나고 있으며 전국 최고의 대학신문으로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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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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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9.5.11(제1호) '漢陽大學報'를 제호로 하여 국한문 혼용 월간으로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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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2.10(제25호) 월간에서 주간 4면으로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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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3.4.11(제82호) 가로체제 한글 편집을 시도, 題字도 한글 '한양대학보'로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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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3.11.17(제123호) 題字를 한자 '漢大新報'로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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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6.6.1(제156호) 첫 8면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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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6.8.9(제166호) 가로 한글 '한대신문'으로 題字를 바꾸면서 한글 신문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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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8.1.1(제195호) 旬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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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2일 (목) 10:41 판

ERICA40년사한대신문에 대한 부분입니다.

소개

한대신문사는 한양대학교의 건학정신인 '사랑의 실천'을 사시로 학구적 풍토를 조성하고 대학언론의 창달을 위해 <漢大新聞 >을 제작 발행하고 있다. 1959년 5월 11일 '漢陽大學報'를 제호로 하여 국한문 혼용 월간으로 창간하였고, 제695호(1985. 3. 14字)부터 수요일에 조판하여 목요일자로 발간하던 것을 제1162호(2004. 3. 8字)부터는 토요일에 조판, 월요일에 발간해 왔다. 제940호(1995. 7. 18字)부터 전 기자들은 PC로 기사를 작성하고 있으며, 컴퓨터를 이용한 편집을 시작했다. 편집인 겸 주간교수의 지도를 받아 학생기자들이 기획, 취재, 편집, 교정 등 신문 제작에 참여한다. 학생기자 구성원은 편집국장을 중심으로 각 부서장과 기자, 수습기자 등이 있고, 편집간사는 대학원 재학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캠퍼스와 ERICA캠퍼스가 공동으로 구성하는 <漢大新聞>은 민주화 운동의 열기와 그 흐름을 같이 해왔다. 민주화 되지 못한 상황 하에서 탄압과 어려움을 겪어온 것도 사실이다. 80년대 초에는 계엄사의 직접검열로 부분삭제를 당하기도 하였으며, 학교 측의 휴교조치로 1980년 4월부터 5월 7일까지 3주간 휴간을 당하기도 하였다. 또한 81년 5월 13일자 축제논평 기사의 내용에 관한 주관교수와 학생기자의 대립으로 기자들이 전원 사표를 내고 2년간 대학원생에 의해 제작되기도 하는 등 질곡의 시기를 겪기도 하였다. ERICA가 개교한 이듬해인 1980년부터 학생을 대상으로 기자를 모집하기 시작하였고, 지금까지도 학생의 언론 구실을 충실히 해 오고 있다.

현재 <漢大新聞>은 종이 신문의 총체적인 위기에 맞서 대학 문화를 형성하고 주도할 수 있는 건강한 언론으로 거듭나고 있으며 전국 최고의 대학신문으로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주요 변천사

  • 1959.5.11(제1호) '漢陽大學報'를 제호로 하여 국한문 혼용 월간으로 창간
  • 1961.2.10(제25호) 월간에서 주간 4면으로 발간
  • 1963.4.11(제82호) 가로체제 한글 편집을 시도, 題字도 한글 '한양대학보'로 변경
  • 1963.11.17(제123호) 題字를 한자 '漢大新報'로 변경
  • 1966.6.1(제156호) 첫 8면 발행
  • 1966.8.9(제166호) 가로 한글 '한대신문'으로 題字를 바꾸면서 한글 신문화함
  • 1968.1.1(제195호) 旬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