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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학전형은 1981학년도에 이르자 큰 변화를 맞이했다. 1980년대 정부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해 7·30 교육개혁조치를 발표하였다. 이 조치는 과외공부의 과열을 해소시키고 고교 교육을 정상화시킨다는 명분하에 취해진 것으로 졸업정원제 실시와 대입본고사 폐지, 대학입학학력고사, 고교내신제 도입이 주된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한양대학교 반월분교 역시 졸업정원제에 의해 입학정원이 재조정되었다.
*1981학년도 반월대학 계열별 학생 현황 (<단위 : 명>) (, 입학인원은 졸업정원에 30%를 가산한 숫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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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학년도 입시에서는 학력고사의 합격선 및 지역구분이 폐지됨에 따라 지방 입시생들은 학교나 학과 위주의 입시풍토에서 벗어나 등록금 면제나 장학금 및 생활비 지급 등의 특전을 주는 사립대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에 우리 대학도 우수한 고교 졸업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많은 장학제도를 마련했다.
*1982학년도 신입생 모집요강이 예년과 달라진 것은 첫째 종래의 대학, 계열에서 학과 위주의 모집방법을 채택했다는 점, 둘째 정원에 미달될 경우에 대비하여 3지망까지 허용한 점, 셋째 고교 내신 성적의 반영률을 30%로 높였다는 점, 넷째 산업체 근로자의 특별사정 및 예·체능계열의 별도 사정을 폐지하였다는 점 등이다. 이와 같이 대대적인 수정안을 제시한 입시제도가 마련된 것은 문교부의 대학정원 조정발표(1981년 10월 8일)에 따른 것인데, 학과의 신설을 최대한 억제하고 정원을 자체 조정하라는 것이 그 골자였다. 이에 따라 전체 입학정원에 대한 이공계의 비율이 낮아지고 인문사회계가 늘어나게 되었다.
*1982년 반월대학 계열별 학생 현황(<단위 : 명>, ( ) 안 숫자는 동계진학자 선발인원이며 입학인원에 포함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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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원 후시험 제도==
*1988학년도부터 대학입시는 선지원 후시험 제도로 바뀌게 되었다. 종전까지는 대입학력고사를 치른 후 각자 지망하는 대학에 지원하는 방식이었으나 이 해부터는 지망학교에 먼저 지원한 후 그 학교의 대입학력고사를 치렀다. 이로써 해당대학이 채점에서부터 합격자 발표까지 모든 입시업무를 관장했다. 하지만 대학 지원 기회가 전·후기 두 차례뿐이었기 때문에 눈치작전이 극심해졌고 학과 간 서열화도 부각되었다. 그리고 재수를 선택하는 학생이 많아졌다. 이외에도 암기식 문제풀이 방식과 전 과목을 공부해야 한다는 점 역시 문제였다. 과외가 금지된 상태였지만 항간에서는 여전히 불법 과외가 성행했다.
==복수지원 금지와 복수지망==
*선지원 후시험 제도가 도입되기 전인 1979년부터 1987년까지 복수지원은 금지되었다. 복수지원은 한 수험생이 여러 학교에 동시에 지원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원천적으로 금지되었고, 선지원 후시험 제도가 실시되면서 수험생이 한 학교에서만 학력고사를 치르게 됨에 따라 이 조항은 자연스레 의미가 없어지게 되었다.
*복수지망은 1988학년도까지 3개 과의 범위 내에서 허용되었다가 1989학년도부터는 2개과로 축소되었다. 복수지망은 수험생으로 하여금 지원한 학교의 학과를 두 개 이상 선택하는 것인데 같은 계열에 한해 국한되었다. 즉, 1지망을 일반계열로 지원한 학생은 2지망으로 예·체능계열을 지원할 수 없으며 1지망을 예·체능계열로 지원한 학생도 2지망은 일반계열로 지원할 수 없었다.
[[분류:ERICA4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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