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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1978년 10월 22일자(공문 대학 1040-1593)로 분교 설치계획이 승인되고, 1979년 3월 1일부터 개강할 것이 허가되었다. 그러나 설치학과 및 입학정원은 기계공학과 500명, 전자공학과 200명, 전기공학과 100명 총 3개학과 800명으로 축소 승인되었다. 더군다나 교육법과 동 시행령 및 대학설치 기준령이 정하는 시설 설비와 교직원, 그리고 학교법인의 수익용 기본재산을 기준액 이상 확보해야 한다는 조건부 승인이었으며, 이상의 조건을 이행한 후 1978년 12월 10일까지 분교 설립 인가를 다시 신청해야 하는 예비적 성격의 승인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부지 매입에 관한 것이므로, 문교부에 재차 45만 평의 부지매입 추천의뢰를 하였다. 마침내 12월 11일 산업기지개발공사로부터 학교설립부지 42만 평에 대한 분양 가계약 체결 동의 요청을 해오게 되었고 이어 21일 가계약이 체결되기에 이르렀다(도입 430-12.170, 한법 제556호 공문). 설립부지의 위치와 면적이 거의 확정되어 가는 것과 함께 우리 대학은 1978년 12월 9일 ‘한양학원 분교(반월공과대학) 설치인가 신청서’를 문교부에 정식 제출하였다(한법 제530호 공문).
**#설치 목적 : 국제경쟁력에 대처할 수 있는 중화학공업 중심체제로의 산업구조개편에 따른 과학 고급기술인력을 양성하고 도시 고등교육인구의 집중화 현상 등을 해소, 지역 사회와 국가 발전에 공헌하고자 함{| class="wikitable"**#명칭 : 한양대학교 분교(반월공과대학)|-**#위치 : 경기도 화성군 반월면 4리 전역(반월신공업도시내 대학교 설치부지 42만 평)| 예시**#연차별 사업계획: [[한양학원 분교(반월공과대학) 설치인가 신청서/연차별 사업계획]] 참조**#교원확보계획 : 145명(79년 46명, 80년~82년 매년 33명씩 증원|}
*분교 설치인가 신청서를 내면서 분교 명칭은 「반월공과대학」으로 확정되었고, 교지도 반월면 사리 전역으로 고정되었다. 개교·개강일까지 정해지고 보니 일정은 매우 촉박하게 되었다. 분교 개교에 따르는 제반 업무도 서둘러야 했으며, 분교 설립계획에 대한 승인이 지연되면서 부지 매입이 늦어짐에 따라 교사신축사업 부진 등으로 교육시설이 미처 갖추어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우선 신입생을 수용할 시설이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반월분교 신축공사기간인 79년도 1학기 동안은 불가피하게 서울캠퍼스 내에 임시 학생 수용대책을 강구해 문교부에 별도 제출하여 보고해야 했다(한법 제10호).
**“1979년 3월 분교 개교에 따른 학생을 수용하기 위한 연건평 2,000평의 대체 교사를 2월 말일까지 신축 완공하여 8월 31일까지 1학기 동안 수용하며, 이 기간의 실험실습은 본 대학교 이공계 학과의 실험실을 이용할 계획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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