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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 및 학사행정의 변화== | ||
+ | ===대학의 전면개편과 신설=== | ||
+ | *1983년에 4개 단과대학으로 승격된 이후의 반월캠퍼스는 전과 비교하여 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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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의 속도가 늦어졌다. 이는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른 후속조치로서의 ‘수도권정비기본계획’ 때문이었다. 이 기본계획은 곧바로 반월캠퍼스의 팽창에 제약을 가했다. 그러나 우리 대학은 이러한 제약이 있다고 해서 육성계획을 늦추지 않았고, 교무행정, 운영제도의 개선 등을 통해 교육의 내적 충실을 기하는 한편 꾸준히 새로운 학과의 설치를 꾀해나갔다. | ||
+ | *1984년 10월에는 이공대학에 전자계산학과, 건축공학과, 토목공학과 등 3개 학과가 신설 인가되었고, 인문사회대학의 신문방송학과가 신문홍보학과로 변경되었다. 이듬해인 1985년에는 제어계측공학과, 광고홍보학과, 보험경영학과, 사회체육과를 비롯한 12개 학과의 증설을 요청하였지만, ‘수도권정비기본계획’에 의한 학생 증원 억제정책으로 인하여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신문홍보학과의 명칭을 교과과정 운영상의 어려움과 학생들의 요구 때문에 신문방송학과로 환원시키고자 하는 요청만이 받아들여졌을 뿐이다. 이어 1968년에도 화학공학과, 제어계측공학과, 환경공학과, 조경건설학과, 광고홍보학과, 보험경영학과, 회화과 등 7개 학과의 신설을 요청하였지만 화학공학과만 인가되었을 뿐 나머지 학과의 신설은 모두 불허되었다. | ||
+ | *이와 같이 새로운 학과의 증설은 억제되었지만 이미 제2캠퍼스 1986년 당시(반월캠퍼스의 변경된 명칭)는 4개 단과대학에 33개 학과의 규모로 확대됨으로써 이제 대학편제의 재개편이 추진되었다. 특히 이공대학의 경우는 14개 학과로 구성되어 있어 대학의 분리가 불가피한 형편이었다. 그리하여 1987년 7월 7일 문교부에 제출한 학생정원조정 신청서에서 이공대학을 공학대학과 이과대학으로, 인문사회대학을 문과대학과 사회대학으로, 법상대학을 법학대학과 경상대학으로, 예체능대학을 체육과학대학과 미술대학으로 각각 분리 개편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요청에 대하여 문교부는 이공대학을 공학대학과 이과대학으로 분리하는 것만을 승인하였다. 4개 단과대학 중 이공대학만이 분리 개편되자 분리되지 않은 대학의 학생들이 이를 문제삼아 집단농성 등 소요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리하여 이듬해인 1988년 7월에 89학년도 대학정원조정 신청서를 제출하였고, 단과대학 개편이 요청한 대로 승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인문사회대가 문과대학과 사회대학, 법상대학이 법학대학과 경상대학, 예체능대학이 체육과학과와 산업미술대학으로 분리개편되었으며, 공학대학에 제어계측공학과, 사회대학에 광고홍보학과가 신설되었다. 이와 같은 확대 개편을 통하여 안산캠퍼스는 1989년 8개 단과대학과 37개 학과로 발전하였는데,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
+ | *1989학년도 대학편제 및 입학정원 |
2020년 5월 8일 (금) 13:36 판
ERICA40년사 중 종합대학으로 변화하는 안산캠퍼스 관련 내용입니다.
대학의 확대와 종합대학으로의 성장
- 1979년 1월 10일 설립이 인가된 당시의 한양대학교 반월분교는 기계공학과, 전자공학과, 전기공학과 등 공학계열 3개 학과에 총 입학정원 800명으로 구성되었다. 의욕적인 반월분교 육성 노력은 설립 첫 해부터 시작되어 1979년 말에는 10개 학과의 증설을 인가받았다. 즉 동년 11월 27일자로 문교부에 제출한 학칙변경 신청서에서 금속재료공학과, 산업공학과, 영어영문학과, 독어독문학과, 일어일문학과, 경제학과, 경영학과, 무역학과, 회계학과 등 10개 학과의 신설을 요청하였던 바, 이것이 동년 12월 8일자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이로써 반월분교는 13개 학과로 확대되었고, 이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공학계, 어문계, 상경계 등 3개 계열로 나누어 관장하였다. 이같이 한꺼번에 10개 학과가 증설된 것은 정부의 수도권인구 분산책에 따른 문교부의 분교 육성정책에도 그 원인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본교의 반월분교에 대한 과감한 시설지원 등의 노력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 이듬해인 1981년에는 3월부터 수차에 걸쳐 학생정원조정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건축공학과, 국어국문학과, 사학과, 사회학과, 수학과, 법학과를 비롯한 17개 학과의 증설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이 요청은 불허되었고, 이를 계기로 우리 대학은 각 계열을 강화할 필요를 느껴 이듬해 3월 1일자로 각 계열의 교학과장 직제를 부학장제로 바꾸었다. 한편 1981년 5월에는 반월분교의 명칭을 ‘반월대학’으로 바꾸는 학칙개정안을 제출하여 문교부의 승인을 받았는데 이는 반월분교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었다.
- 그리고 또 한 차례의 대폭적인 증과가 이루어진 것은 1982년이었다. 이 해 6월 15일 문교부에 제출한 83학년도 학생정원조정 신청서에 의하면 전년도에 증과 신청했던 학과를 포함한 20개 학과의 신설을 요청하였다. 아울러 기존의 4개 계열을 8개 계열로 개편 확대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 요청에 대해 문교부는 동년 10월 5일 결과를 통보하면서 8개 계열 10개 학과의 증설을 승인하였다. 이 때 승인된 학과는 신문방송학과, 사회학과, 문화인류학과, 물리학과, 국어국문학과, 화학과, 경기지도과, 공예과, 수학과, 법학과 등 10개 학과였다. 그러나 사학과의 신설이 불허됨으로써 어문계열의 인문계열로의 변경은 불가하였고, 대신 자연계열이 신설되며 사회계, 법과계, 미술계와 더불어 4개 계열이 추가 설치되었다.
- 반월대학의 규모가 급속히 팽창하자 본교는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하나의 단과대학 체제로 26개의 학과를 관장한다는 것은 운영의 효율성뿐만 아니라 교육의 실효성 면에서도 많은 문제점을 야기시켰던 바, 이에 본교는 유사계열을 통합하여 4개 단과대학으로 승격시킬 계획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기존에 하나의 단과대학으로 되어 있는 반월대학의 명칭을 반월캠퍼스로 바꾸어 4개 단과대학으로의 승격에 대비해야 했다. 그러나 문교부는 이 학칙개정안을 승인하지 않았는데, 당시 문교부로서는 본교 학생과 분교 학생을 구분하는 개별 명칭을 학칙에 명문화시키는 것에 주저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단과대학으로의 승격을 늦출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직제변경을 통하여 반월대학을 내부적으로 승격시킨 후 곧이어 1983년 4월에 학생정원조정 신청서를 문교부에 제출하였다. 이 신청서에 의하면 기존의 공학계와 자연계를 통합하여 이공대학으로, 인문계와 사회계를 인문사회대학으로, 법과계와 상경계를 법상대학으로, 체육계와 미술계를 예체능대학으로 각각 통합 승격시키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문교부는 1983년 9월 8일자로 학생정원조정 결과를 통보하면서 이를 전면 승인하였다. 아울러 생화학과, 지구해양과학과, 산업미술과 등 3개 학과의 신설도 인가되었는데 이로써 반월대학은 이공대학, 인문사회대학, 법상대학, 예체능대학 등 4개 단과대학 29개 학과로 승격 개편되었다. 이로써 학칙상 본교와 분교의 구분은 없어지게 되었고, 반월의 4개 단과대학은 위치만 반월에 둘 뿐, 서울 본교의 11개 단과대학과 동등한 한양대학교 내의 단과대학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 1984년 11월에는 이공대학에 전자계산학과, 토목공학과, 건축공학과가 신설되었으며, 인문사회대학의 신문방송학과가 신문홍보학과로 변경되었다(1985년 신문홍보학과는 신문방송학과로 재변경). 계속적인 학교의 확장과 도시 지명의 변경으로 본교의 명칭도 차례로 변경되었다. 최초 ‘반월분교’에서 ‘반월대학(1982년)’으로 변경되었으며, 1983년 ‘반월캠퍼스’로 바뀌었고, 1986년 3월에는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제2캠퍼스’를 거쳐 1987년 3월, 반월이 안산시로 승격되면서 이를 반영하여 ‘안산캠퍼스’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후에도 대학의 확대는 이어져, 1989년도에는 공학대학, 문과대학, 사회대학, 이과대학, 법학대학, 경상대학, 산업미술대학, 체육과학대학의 8개 단과대학을 갖추게 되었다.
- 1983년 반월캠퍼스 학과별 학생 현황(단위 : 명, 입학인원은 졸업정원에 30%를 가산한 입학인원임)
계열 | 졸업정원 | 입학인원 |
---|---|---|
이공대학
(기계공학과, 전자공학과, 전기공학과, 금속재료공학과, 산업공학과, 수학과, 물리학과, 화학과, 생화학과, 지구해양과학과) |
850 | 1,105 |
인문사회대학
(국어국문학과, 일어일문학과, 중어중문학과, 영어영문학과, 독어독문학과, 불어불문학과, 사회학과, 신문방송학과, 문화인류학과) |
490 | 637 |
법상대학
(법학과, 경제학과, 경영학과, 무역학과, 회계학과) |
310 | 403 |
예체능대학
(체육학과, 무용과, 경기지도과, 공예과, 산업미술과) |
189 | 247 |
반월캠퍼스 | 1,839 | 2,392 |
교육 및 학사행정의 변화
대학의 전면개편과 신설
- 1983년에 4개 단과대학으로 승격된 이후의 반월캠퍼스는 전과 비교하여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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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 속도가 늦어졌다. 이는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른 후속조치로서의 ‘수도권정비기본계획’ 때문이었다. 이 기본계획은 곧바로 반월캠퍼스의 팽창에 제약을 가했다. 그러나 우리 대학은 이러한 제약이 있다고 해서 육성계획을 늦추지 않았고, 교무행정, 운영제도의 개선 등을 통해 교육의 내적 충실을 기하는 한편 꾸준히 새로운 학과의 설치를 꾀해나갔다.
- 1984년 10월에는 이공대학에 전자계산학과, 건축공학과, 토목공학과 등 3개 학과가 신설 인가되었고, 인문사회대학의 신문방송학과가 신문홍보학과로 변경되었다. 이듬해인 1985년에는 제어계측공학과, 광고홍보학과, 보험경영학과, 사회체육과를 비롯한 12개 학과의 증설을 요청하였지만, ‘수도권정비기본계획’에 의한 학생 증원 억제정책으로 인하여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신문홍보학과의 명칭을 교과과정 운영상의 어려움과 학생들의 요구 때문에 신문방송학과로 환원시키고자 하는 요청만이 받아들여졌을 뿐이다. 이어 1968년에도 화학공학과, 제어계측공학과, 환경공학과, 조경건설학과, 광고홍보학과, 보험경영학과, 회화과 등 7개 학과의 신설을 요청하였지만 화학공학과만 인가되었을 뿐 나머지 학과의 신설은 모두 불허되었다.
- 이와 같이 새로운 학과의 증설은 억제되었지만 이미 제2캠퍼스 1986년 당시(반월캠퍼스의 변경된 명칭)는 4개 단과대학에 33개 학과의 규모로 확대됨으로써 이제 대학편제의 재개편이 추진되었다. 특히 이공대학의 경우는 14개 학과로 구성되어 있어 대학의 분리가 불가피한 형편이었다. 그리하여 1987년 7월 7일 문교부에 제출한 학생정원조정 신청서에서 이공대학을 공학대학과 이과대학으로, 인문사회대학을 문과대학과 사회대학으로, 법상대학을 법학대학과 경상대학으로, 예체능대학을 체육과학대학과 미술대학으로 각각 분리 개편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요청에 대하여 문교부는 이공대학을 공학대학과 이과대학으로 분리하는 것만을 승인하였다. 4개 단과대학 중 이공대학만이 분리 개편되자 분리되지 않은 대학의 학생들이 이를 문제삼아 집단농성 등 소요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리하여 이듬해인 1988년 7월에 89학년도 대학정원조정 신청서를 제출하였고, 단과대학 개편이 요청한 대로 승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인문사회대가 문과대학과 사회대학, 법상대학이 법학대학과 경상대학, 예체능대학이 체육과학과와 산업미술대학으로 분리개편되었으며, 공학대학에 제어계측공학과, 사회대학에 광고홍보학과가 신설되었다. 이와 같은 확대 개편을 통하여 안산캠퍼스는 1989년 8개 단과대학과 37개 학과로 발전하였는데,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1989학년도 대학편제 및 입학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