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 1939년 7월 1일 동아 공과학원 설립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때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기승을 부리던 고난의 시기로 한국인에 대한 고등기술교육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던 일제의 식민지 교육정책에 항거하여 조상이 천시해 온‘쟁이’를 양성하는 기술교육만이 나라와 우리 민족을 살리는 길이라고 굳게 믿은 25세의 청년 김연준 선생이 동아 공과학원을 설립한 것이다. 실용적인 기술교육의 시발점이 된 동아공과학원은 토목(주∙야), 건축, 광산 등 2년제 3과로 전임교사 13명,강사 22명으로 학생 630명을 모집하여 종로구 경운동 88번지 천도교 기념관에서 첫 수업을 시작했다.
1940년대
- 1941년 제1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 1942년 12월 수준 높은 고등기술교육 실시의 의도를 의심한 일제의 발악은 극에 달하여 전문학교로의 승격을 불허됐다.
- 1943년 일제에 의해 신입생 모집 중지령과 연이은 수업 단축령이 내려졌다.
- 1943년 3월 동아고등공업학원은 개교 2년 만에 78명의 제1회 졸업생 배출과 함께 폐교하게 됐다.
- 1943년 9월 동아공과학원도 문을 닫게 되었다.
- 1945년 8월 건국기술학교 설립으로 거듭나게 됐다.
전문부는 야간 3년제로 종로구 신문로의 피어슨 성경학원에서,
야간 2년제인 중등부는 종로구 수송동 수송전기학교에서 토목과, 건축과 등 2개과로 개교하였으며 이는 현재 한양의 초석이자 본격적인 고등기술교육의 시작점이었다.
- 1946년 5월 김연준 선생이 사재를 털어 재단법인 한양학원을 설립하고, 소화공과학교를 인수한 후 건국기술학교의 중등부와 병합, 한양공업학교를 설립하여 신당동 251번지에서 개교했다.
- 1946년 8월 중등부를 분리시킨 건국기술학교는 건국기술전문학교로 개명했다.
- 1946년 12월 교사를 신당동 251번지로 이전했다.
- 1947년 12월 국기술전문학교는 문교부로부터 대학관으로 승격 인가를 받게 되었으며 한양공업대학관은 건국기술전문학교에서 계승된 토목, 건축, 전기, 기계 등 야간 2년제 4개 학과의 모습을 갖추었다. 건국기술학교와 한양공업대학관으로 이어지는 정규 대학 설립의 열망은 1948년 7월 1일 한양공과대학 설립 인가(文高發제114호)를 통해 결실을 맺게 되었다.
한양공과대학은 주간과정의 전기공학과(정원 200명), 기계공학과(정원 200명)와 야간과정의 토목공학과(정원200명), 건축공학과(정원 200명), 전기공학과(정원 200명), 기계공학과(정원 200명)로 출발하였으며 초대 학장에 김연준 박사가 취임하였다. 이로서 동아공과학원이 설립된 지 20년 만에 우리나라 유일의 4년제 정규 민립 공과대학으로 한양의 역사는 이렇게 다시 시작되었다. - 1949년 9월 대학 설립이후 야간과정이던 토목공학과, 건축공학과를 주간학과로 전환하고 야간학과인 전기공학과와 기계공학과의 수업연한은 2년으로 단축하였다. 1950년 4월에 주간 및 야간에 공업화학과를 신설하고 2년제 야간학부를 4년제 초급대학으로 개편하였으며 공업교사 양성을 목적으로 2년제인 부설 중등교원양성소를 설치하였다.
1950년대
- 1941년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하였다.